전통의 가치를 인생에 담다

한복인
박술녀 원장

하늘한 저고리에 곱디 고운 무궁화가 흐드러졌다. 군인들이 보는 잡지라기에 무궁화 수를 놓은 한복을 골라보았다는 말에서 어느 사소함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박술녀 원장의 올곧음이 엿보였다.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으로 가위질 한 번, 바느질 한 땀마다 변함 없는 애정과 노력을 심는 ‘한복인’ 박술녀 원장이 이 시대의 청춘에게 전하는 이야기.

많은 분들이 ‘한복’ 하면 자연스럽게 박술녀 선생님을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한복과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HIM>과의 인터뷰라서 특별히 하는 얘기지만, 어릴 적에는 멋진 여군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어떻게 해야 군인이 될 수 있는지도 몰랐던 때였죠. 장녀인 저는 어려서부터 방직공장에 들어가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주며 자랐어요. 그러다 어머니께서 한복을 권하셨죠. 어려서부터 집안 잔치에는 꼭 한복을 곱게 입고 가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인상깊었던 데다, 전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어머니 말씀에 한복을 하기로 마음먹고 20대 후반에 이리자 선생님 문하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 후로 40년 이상 한복을 만들고 연구하며 지금까지 왔네요.

한복은 우리의 전통 의복이지만 그 다양성이나 매력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복의 멋, 한복의 매력이란 어떤 것일까요
한복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 옷’이라는 애착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이고, ‘의식주’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자 영혼을 담고 있는 옷이지요. 그런 만큼, 요즘 확산되는 한류 열풍 가운데 한복이 빠져있다는 건 상당히 아쉬운 일이에요. 한식이나 음악, 드라마 등도 좋지만 한복의 아름다움도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불편하다, 즐겨 입기 어렵다, 비싸다’ 같은 한복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있는데요.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오히려 더 비싸야 한다고 생각해요. 겨울 한철 입는 밍크코트나 명품은 아무 불만 없이 비싼 돈을 주고도 구입하고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잖아요. 남의 나라 옷은 사서 입고, 우리 나라 옷은 물려입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요. 입을 기회가 많이 없다지만 전통의복 한 벌을 갖고 있지 않은 게 당연하다는 인식도 달라져야 해요.

인사동이나 한옥마을을 가면 한복을 입고 나들이하는 모습, 생활 속에서 간소화된 디자인의 한복 치마와 저고리를 착용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한복의 소비 방식이나 현대화, 대중화 등 한복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복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고 변화를 겪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요. 다만 너무 심한 변형으로 이제 전통인가, 한복인가 싶을 정도는 아니었으면 합니다. 한복은 한복의 품격이 살아 있을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해요. 서양옷은 옷장 가득 가지고 있으면서 내 한복 한 벌은 없고, 그저 고궁에서 몇 시간 대여해 예쁘게 입고 거니는 소비 방식이 진짜 한복을 사랑하는 방법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방탄소년단 등 아이돌들이 한복을 모티브로 한 의상들을 선보이면서 젊은 층에서도 한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청년 장병들이 멋스럽게 입을 수 있을 만한 한복이 있을까요
남성 한복은 크게 저고리와 바지, 마고자, 두루마기를 갖춰서 입습니다. 그중에서도 두루마기는 어떤 의복보다도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을 담은 옷이에요. 또 양반층의 의복인 갓과 도포는 남성 한복의 품위를 보여주지요. BTS가 차용한 것은 무관의 옷인 철릭인데, 그 또한 남성적인 매력이 있고 멋스럽고요. 단순히 패션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청년들이 인생의 중요한 관문을 넘어서는 전역을 기념하며 내 몸에 맞는 전통 한복 한 벌을 갖춰 마련하는 문화가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한복 고유의 멋이 알려지면서 중국은 오히려 한복이 자국의 전통 복장이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히려 우리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유의 옷인 한복을 한국인의 손으로 만드는 대신 중국에서 바느질해 오고, 인생의 중요한 날에도 한복 한 벌이 없어 빌려다 입고 있지 않아요? 우리의 전통이라고 말만 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옷이기에 한국인이 직접 만들고 지켜내고 입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야지요. 소모적인 언쟁을 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미래인 젊은이들이 한복을 직접 입고 아끼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지으신 한복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평생 한복을 만들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게 해준 분은 어머니셨어요. 처음 한복을 권하셨던 것도 어머니셨지요. 한복은 우리의 옷이니, 우리 나라가 존재하는 한 한복에는 미래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 어머니께 선물을 드리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팔순 잔치 때 온 가족이 제가 만든 한복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입관할 때 입으신 수의 또한 제 손으로 만들었지요.

한복인으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에는 대한민국민 모두가 한복을 입는 날을 향해 달려오던 마음에 변화가 있었어요. 한 해, 두 해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요. 다만 지금껏 해온 것처럼 꾸준히 하려 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하고 한복이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서 누군가 “나도 한복을 입고 싶다”며 찾아올 때,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 귀한 옷을 지어낼 수 있는 그런 한복집으로 자리하고 싶어요. 또 최근에는, 꼭 한복이 아니어도 중요한 자리에 입고 나설 수 있도록 전통과 서양옷을 접목해 비단으로 서양 의복을 짓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좀 더 오래 제 일을 지켜가려는 노력의 일환이지요.

후학양성에도 힘쓰고 계시죠. 어떤 선배이자 어떤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건강을 비롯해 자기관리를 잘 하는 오너이자 스승으로 기억되길 바라요. 우리 제자들은 항상 제 건강을 걱정하고, 본인들이 좀 쉬어야 할 때에도 제가 쉬지 않는 것을 보고 쉼 없이 노력하려 하지요. 그렇게 일하고 노력만 하다 보니 노는 법도 모르고요. 저는 열심히 한복을 위해 몸바쳤던 스승으로 인정받고 싶지만, 동시에 제자들이 너무 제 길을 따라오려 숨이 벅차도록 애쓰기보다는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태도를 배웠으면 싶습니다.

<HIM>을 발행하는 사단법인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는 산간 도서 지역 및 군부대 등 소외 지역 계층에 도서관 건립 및 도서 후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겪을 때 책에서 그 해답을 얻는다고 하는데요.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인생 책’이나, 장병들에게 권하고 싶으신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옛날에는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같은 고전을 주로 읽었어요. 그러나 그런 책들은 지루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짬이 날 때마다 <샘터>같은 얇은 정기간행물을 읽기도 합니다. 어렵고 심오한 책만을 읽는 게 아니라 책과 가까워지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장병 여러분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책들을 많이 읽으며 군 생활을 채워가시길 권합니다. 군대에서 보내는 소중한 청춘, 귀한 시간을 묵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자, 사회에 복귀해 넓게 뛸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시간으로 만들어 보세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계신 만큼,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을 잘 아실 것 같습니다. 관련된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정말 꼬박 석 달을 걱정과 눈물로 보냈어요.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또 익숙해져서, 면회도 자주 가지 않게 됐어요. 어느덧 제대 5년 차가 됐네요.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말씀과 함께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희 자녀들을 포함해, 이 시대의 아픈 청춘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아픈 젊은이들에게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쓴소리든, 단소리든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어요. 바쁘다는 이유로 실천하지 못했던 터라 이번 인터뷰를 반갑게 받아들이게 된 겁니다. 저는 늘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해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요. 또 군대에서 배울 것은 많지만 담배만은 배우지 않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담배는 백해무익하니 멀리하십시오. 건강관리는 젊을 때 해야 합니다. 저도 암과 대상포진, 당뇨까지 앓으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또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에도 했던 얘기인데, 글씨연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고는 하지만, 60이 넘은 사람으로서 당부하건대 어디 가서 본인 이름 석 자 정도는 반듯하게 쓸 수 있어야겠지요. 글씨체 또한 자신을 보여주는 일면이니만큼 낙서든 뭐든 많이 쓰고 연습하시길 바라요.

끝으로 군 장병들을 위한 격려와 조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군에서의 추억, 그곳에서 흘린 피와 땀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사회에 꼭 필요한 밀알같은 청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정말 젊은이들이 모두 잘 됐으면 좋겠어요.

힘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