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고향에서 활찍 핀 인생 2막

크리스 존슨
Kris Johnson

미국의 어느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난 소년은 전쟁영화와 책으로 접한 군인의 모습에 매료되어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비록 다른 꿈을 쫓기 위해 사관학교는 그만뒀지만, 군복을 입었던 시절은 여전히 그립고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소년의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한국 정착 11년차, 새로운 고향에서 동반자와 꿈을 동시에 찾은 크리스 존슨의 이야기.

미군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와 책에서 자극을 받은 그는 원대한꿈을품고 사관생도로서의 삶을 택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국에서 온 크리스 존슨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방송도 하고 영어 강사도 하고 있어요. 프리랜서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Absolutely American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 좀 애국심이 강했어요. 그래도 처음엔 군대에 갈 생각은 없었는데,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면서 점차 군인의 꿈을 키웠죠. 특히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요. 세계1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인데 거기서 자극을 받았어요. 엄청 감동적이었고 우리 미군들이 너무 멋있어 보이는 거예요. 애국심이 막 차오르면서 ‘군대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ABSOLUTELY AMERICAN』이라는 책에서도 영향을 받았어요. 데이비드 립스키David Lipsky라는 기자가 쓴 책인데, 그 책을 통해서도 여러모로 자극을 받고 군에 지원하게 됐어요. 그냥 군대에 가기보다는 대학교도 다니면서 군대도 들어가기 위해 최고라고 들어왔던 육사를 선택했고요.

미국 육군사관학교만의 특별한 문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다 독특했어요. 주변에도 군인이 없었기 때문에 군대에 대한 로망만 있었는데, 육사 입학하고 그 로망들이 바로 깨졌죠. 힘들다, 보통 일이 아니다 싶었어요. 호칭부터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거든요. 동기들은 원래 아버지가 군인이었다거나 해서 어느 정도 군 문화에 익숙한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면 “yes, sergent”, “yes, sir” 이런 식으로 sergent과 sir를 구별할 줄 아는 상태로 들어왔다면 저는 sergent조차 부를 줄 모르고 그냥 캘리포니아 느낌으로 프리하게 불렀거든요. “Hey man~” “Help me~” “Ya please~” 이런 식으로 했다가 첫 날 엄청나게 혼났죠. 벌도 많이 받았고 ‘이거 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사관학교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 있나요 한국에 와서 들어봤죠. 저랑 친한 형이 개그맨 서경석씨예요. 그분도 육사 들어갔다가 나와서 서울대에 갔대요. 아무튼 아주 머리가 좋은 형인데 힘들어서 그랬는지 육사에서 저보다 더 짧게, 금방 나왔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육사에 대한 말은 별로 안 해주더라고요. 한번은 차 타고 육사 근처를 지나갔는데 캠퍼스가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도 좋고 산도 가까이 있고, 한 번 제대로 구경 가보고 싶어요.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어떤 것들을 배우나요 교육과정이 좀 빡세요. 주로 과학이랑 수학을 많이 가르치는데, 실은 제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과학이랑 수학이거든요. 근데 1학년부터 몰아서 엄청 배워야 했어요. 일반 군사훈련도 있고, ‘Navigation’이라는 수업도 있어요. 내가 혼자 무인도에 있다고 가정하고, 나침반을 보면서 다시 우리 집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음식도 없고 물만 있는 상황에서의 생존법, 지도 읽는 법, 이런 것들을 배우는 수업이었어요.

군사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과학과 수학을 강조하다니 의외예요 역사적으로, 옛날에 육사가 처음 생겼을 때 Civil Engineering(토목공학)을 중심으로 학사과정을 짰거든요. 그때 미국에 도로도 별로 없고, 아직 인프라가 너무 부족했어요. 그래서 육사 졸업생들이 도로도 깔고 나라를 엄청 발전시켰어요. 그 이후로 여러 명문대에도 토목공학과가 생겼지만, 육사가 최초였고 미국의 인프라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엄청나게 큰 역할을 했어요. 이후 문과도 들어왔지만, 총이나 박격포 같은 화기를 계산해서 쏘려면 숫자를 잘 알아야 하고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 엔지니어링도 중요하기 때문에 여전히 과학과 수학에 무게를 두고 있죠.

육사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처음 자유의 맛을 봤을 때요. 신병 훈련 끝나고였어요. 친구네 집이 좀 잘 살았는지, 친구 아버지가 학교 근처 호텔에서 엄청난 식사를 대접해 주시는 거예요. 그거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갑자기 막 울었어요. ‘밥맛이 이렇게 좋았구나’ ‘자유라는 게 아주 좋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괴롭거나 힘들었을 때는요 많은 준비 없이 들어갔기 때문에 처음부터 힘들기는 했었어요. 한 번은 소변으로 마약검사를 하는데 고참이 화장실에 들어와서 소변 볼 때까지 옆에서 막 소리를 질렀어요. 그런데 고참 때문에 엄청 긴장되니까 아무리 해봐도 안 나와요. 소변 볼 때 옆에서 고참이 소리질렀던 순간이 정말 최악의 기억이었어요. 좀 나가주시면 제가 편하게 볼일 볼 수 있는데, 바로 옆에서 귀에다가 소리 지르고, 계속 물 먹여주면서 “물 먹어! 빨리 먹어!” 어휴…. 힘들었어요.

그밖에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나요 아침 기상도 많이 힘들었어요. 항상 5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제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일어나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빨리 준비해야 하잖아요. 면도도 하고 군복 제대로 입고 명찰 제대로 붙이고. 근데 아침에는 너무 깜깜해요. 그래서 명찰 막 거꾸로 붙인 적도 많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너무 큰 숙제였어요. 그렇게 혼나고, 옆이나 뒤 보고 웃으면 또 혼나고.. 결국 다 욕 먹는 거예요, 저 때문에. 초반에 이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어요. 그래서 군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옆 사람 좀 보고, 앞 사람도 보고, 고참 눈치도 보면서 똑바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군 생활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팀워크라는 걸 혼나면서 제대로 배웠거든요. 나 혼자 그냥 막 하다가는 다 피해 보니까요. 그래도 제가 운동은 좀 잘 해서, 운동 못하는 친구를 도와줬던 경험이 있어요. 친구가 거의 포기하려고 할 때 뒤에서 밀어주고, 나 때문에 욕 먹었으니까 서로 이렇게 도와주며 손 잡고 하자고요. 그게 군 생활의 기본 아닐까요.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중간에 그만두신 이유가 있을까요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성격이 워낙 자유분방하니까 좀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하자 싶어서 그만두게 됐습니다. 엄청 어려운 결정이었어요. 사실 들어가자마자 ‘이거는 나랑 좀 안 맞다’라고 생각하긴 했어요.바로그만두고싶은걸참고옆사람들보며힘을 냈었죠. 결국 그만두기는 했지만 완전 어려운 결정이었어요.

중퇴하긴 했지만 군복이 자랑스러웠던 순간도 있었겠지 부대 밖으로 군복 입고 나가면 대접이 달라요. 대우가 좋아요. ‘군복 입고 있으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구나’ 생각했었고, 실제로 여러 혜택도 있고요. 술집이나 호텔, 택시까지도 할인 받고 그런 게 좋았어요. 펜타곤으로 군인용 투어도 갔었어요. 건물 안으로 특급 투어를 하는데, 그 안에 전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전쟁실이 있어요.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같은 전쟁 현장을 볼 수 있는 곳인데 화면으로 실제 전장을 보면서 ‘미국이 보통 나라가 아니구나’ 이런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다시 군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나요 군 생활 하는 장면이 가끔 꿈에서 나와요. 1년에 한 두 번 정도? 시험 보는 날 준비 하나도 안 하고 가서 교수님한테 막 혼나는 그런 악몽도 있고요. 군대 동기들과 이것저것 먹고 즐겁게 지냈던 군 생활이 떠오를 때는 ‘아 그렇게 즐거웠었나, 다시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일단 안정적이고 대우도 좋고, 군인이라는 직업이 나라를 위하는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육사 생활을 통해서 얻게 된 인생의 교훈이나 삶의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까요 “이 세상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옆사람, 윗사람, 아랫사람 다 같이 살아가는 거니까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가자”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집이나 학교에서 얻지 못했던 교훈을 군대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 생활,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군대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Almost Korean

아시아 역사를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어릴 때부터 히스토리 채널을 주로 봤었고, 육사에서 중국 역사 수업을 듣는데 그 교수님이 강의를 정말 잘 하셔가지고 ‘아시아 역사가 우리보다 길고 배울 게 많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전공하게 됐어요.

요즘에는 한국사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우리 한국 역사에서 특히 우리 세종대왕님을 존경해요. 한자만 있었으면 제가 이렇게 한국말을 못 배웠을 거예요. 한글이 이렇게 과학적이고 쉽기 때문에 제가 우리 세종대왕님께 크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아요.

한국의 전쟁사 중에 인상 깊은 점이 있었나요 한국사에서는 이순신 장군님과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를 예전부터 알고 있어요. 영화 <명량>도 봤고 거북선 다시 재현하는 축제도 가 봤어요. 한산대첩 축제에서 직접 거북선 탑승도 해보고 옛날 군복도 입어봤던 게 기억에 남아요. 또 요즘에 한자도 배우고 있는데 이순신 장군님이 쓰셨던 ‘필사즉생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라는 말이 되게 멋진 말이더라고요. 제가 육사 시절 이 말을 알았더라면 이런 마인드로 제대로 생활해서 완전 승승장구했을 거예요.

#Thank you, Soldiers!

미국은 군인에 대한 예우, 인식이 높은 편이죠. 한국에서도 이런 인식이 퍼지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일단 기본적으로 군인이라는 직업을 존경해야 돼요. 자발적으로 갔든 아니든 국가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군인들이 국가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한 우리는 군인에 대해 최대한 대우하고 존경해야 해요. 그래야 군인들이 일할 힘도 생기잖아요.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주면 일하기도 싫고 일할 맛이 떨어져요. 저도 군대에 있을 때 밖에서 좋은 시선으로 봐주면 힘이 났어요. 그런 인식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되거든요. “Thank you for your service” 이런 칭찬들로 군 생활 버틸 수 있었어요.

끝으로 대한민국 국군 장병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 부탁합니다 장병 여러분, 아주 훌륭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힘든 거 알고 있는데, 나라를 위한 중요한 일이니까 자부심 가져도 됩니다. 정말 잘하고 계시고, 제가 다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한국에 살고 있으니까 한국을 지켜주시는 군인들 제일 감사하거든요. 어디 가서 만나면 아는 척 해 주세요. 영어로 짧게 한 마디 “Yo~” “Hi” “What’s up?” 건네주시면 아주 쿨하게 받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가 군복을 입은 청춘들 모두를 응원합니다!

힘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