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부를 땐 한없이 감미롭다가, 수학 얘기가 나오니 화를 내며 침을 튀기기 시작한다. 군 시절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파란만장했다. 850만 수강생을 보유한 이 남자, 정말이지 범상치 않다.

 #수학과 음악에 미친 남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수학 선생님이고요. 수학 선생님인데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음악과 수학을 동시에 정복할 순 없을까’를 꿈꾸는 남자, 정승제입니다.

수학 강사가 트로트 음원을 내는 일은 흔치 않은데, 삶에서 음악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음계가 등비수열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음악도 수학의 부분 집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너무 절묘하죠. 화음의 조화를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20년째 수학 강사로 일하면서 수학적으로만 생각해 피폐해진 뇌를 음악적으로 순화시키는 부분이 저에게는 힐링인 것 같아요. 수학을 좋아하기 훨씬 더 전부터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음악을 전공하신 담임 선생님이 저에게 “성악과 갔으면 좋겠다”라고 할 만큼 저는 음악적으로 자질이 뛰어난 어린이였답니다.

다양한 장르의 곡을 내셨는데, 앞으로 노래에 담고 싶은 색깔은 무엇인가요
제가 EBS 수업 오프닝 때 음악을 틀어주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부모님이 고3 내내 음악을 듣지 못하게 하셔서 오프닝이 저의 유일한 음악 감상 시간이에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수험생 친구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음악을 해주고 싶습니다. 또한 트로트는 사람들을 웃을 수 있게 하는 청량제 같은 느낌으로 만들고 싶어요.

 가수로 섭외된다면 나가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신가요

<뮤직뱅크>, <쇼 음악 중심>. 이거 두 개는 일단 나가야 하고요. 그걸 통해 <아는 형님>까지 섭렵하는 게 저의 3대 목표라고 보시면 됩니다. 4대까지 보자면 <놀면 뭐하니?>까지, 이렇게 살짝 바래 봅니다.

위너스클럽 운영, EBS출강 등 공익을 추구하는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교육자로서의 청사진이 있다면요
한국은 어떤 나라보다도 선행 학습 시스템이 잘 돼 있는 나라인데, 수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누군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수학을 대하는 태도만 바꾸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인지시켜주고 싶어요. 그게 저의 목표입니다.

어떤 연유로 수학을 좋아하고 가르치기까지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누군가가 수학을 대하는 태도를 제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수포자’였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첫 번째 중간고사 점수가 너무 낮았거든요. 어떤 어른들은 수학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들한테 “수학은 암기 과목이다”라는 말을 해요. 저도 당시엔 암기해서 공식에다 숫자 대입하면 답 나오는 게 수학인 걸로 착각했으니까요. 그런 착각을 고쳐주고 깨우쳐주는 역할이 바로 제가 지금 몸담은 강사라는 직업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어떤 강사님을 통해서 수학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뀌었거든요.

강의 중에는 다소 화가 난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강의 중 모습이 실제랑 비슷해요. 잘못된 행동을 보면 화가 나요. 특히 학생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수학을 공부하는 모습과 국민들을 속여가면서 자기의 이익을 쫓는 정치인들의 모습이요.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코델리아라는 강아지랑 둘이 살고 있기 때문에 말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까 혼자서 생각하는 게 습관처럼 굳어져서 평소에는 거의 말이 없는 편입니다.

바쁘게 이어지는 스케줄로 번아웃이 온 적은 없으신가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바쁠 때는 수업이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계속 있는데, 시간이 되게 빨리 가요. 적성에 잘 맞나 봐요. 반면 학생들이 바라보니까, 부담되고 긴장돼서 고통스럽긴 대단히 고통스러워요. 그래도 내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가장 좋은 영향을 줘야 하니까 노력하는 거죠. 끝난 다음에 또 준비하고, 끝난 다음에 또 준비하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긴장을 푸는 본인만의 힐링법이나 원동력이 있으시다면요
노래요. 제가 원래 음정이 많이 떨려서 혼자 있을 때 음정을 꾸준히 연습해요. 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서 어떤 식으로 발성을 내고 표현할까 생각해요. 근데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강의는 찾았는데 그런 발성은 아직 못 찾았어요. 그래서 친분이 생긴 가수분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해요. 노래 연습할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아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첫째, 거절하는 법을 배우세요. 거절 몇 번 해보면 금방 쉬워지거든요. 둘째, 별거 아니에요. 주저하느라 대부분 시작을 못하거든요. 한 번만 그냥 질러 버리면 돼요. 셋째, 남들 시선 의식하지 말고, 남들이 어떻게 하라는 조언 좀 듣지 마세요. 그 사람들이 본인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데 왜 그 사람들이 본인한테 조언을 해요. 자기는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질러봐요. 설령 이루지 못하더라도 느끼는 게 있을 거예요

#군대, 인생의 담금질

행정병이셨다고 들었는데, 보직은 어떻게 정해졌나요
제가 당시에 좀 듬직해서 기무사로 확정이 됐는데, 마지막 3차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대학 3학년 때 과외 알바만 하느라 수업을 못 들어서 학사경고를 받았거든요. 그래서 미분류 병사로 부대 배치 열차를 타고 의정부 쪽 306보충대에 내려서 대기했어요. 마지막 날 가평 66사단 포병연대, 155mm 포를 옮기는 병사로 배치되기 직전이었어요. 연대장님과의 단체면담 시간, 연대장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 있나” 하면 저희가 “없습니다!” 해야 했어요. 근데 제가 그걸 깨고 “이병 정승제” 외쳤죠. 모두가 식은땀을 흘렸어요. 연대장님이 “뭔데” 하니까 제가 “사회생활도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데, 군대 생활도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고 했어요. 그분이 허허 웃으며 “네 적성은 뭔데” 하시길래 행정병이라고 했죠. 그 후에 정보과로 가서 타자 시험을 쳤어요. 원래 300타였는데 너무 떨려서 150타밖에 안 나왔죠. 보안관님이 헛웃음을 치셨어요. 알고 보니 제가 들어오기 전에 한 행정병이 보안상 불법을 저질렀다고 해요. 그래서 연대장님이 보안관님에게 그랬대요. “너는 이렇게 적성이 맞는 애가 널렸는데 그런 앨 시키냐? 얘 써라” 그렇게 전 5대대에 있다가 연대본부 행정병이 되었답니다.

그렇게 따낸 보직에 만족하셨나요
아니요. 편할 줄 알았는데 야간작업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너무 피곤했어요.

군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한 활동이 있으셨나요

98년 9월 27일이 건군 50주년이라 사단 체육대회를 하는데 포병연대 응원단장을 뽑는 거예요. 지원했죠. 이등병인데. (웃음) 당시 말년 병장님이 저한테 “야 신병. 원하는 거 내가 다 구해줄게” 하셔서 제가 흰 장갑 한 박스랑 호루라기를 요청했어요. 그분이 춘천까지 가서 구해오셨더라고요. 그래서 응원단장을 했죠.

이병이 단장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미움 많이 받았어요. 작전 장교님이 “계급 상관없이 다 정승제 이병이 하라는 대로 해” 하셨고, 저는 포상 휴가도 나왔거든요. 그리고 아까 연대장님한테 얘기해서 보직을 바꾼 것부터 눈엣가시였죠. 심지어 단장할 때는 선임들 300명 모아두고 “5분간 휴식” 이랬으니까요. 미친 거죠. 아무튼 그래서 군 생활 처음부터 완전 꼬였어요. 눈치 없고 미움받은 이병이었던 게 기억납니다.

 군 생활에서 가장 위기였던 순간은

저는 수학도 개념으로 푸는데 군대에서는 서열부터 보직까지 다 암기였어요. 못 외워서 되게 혼났죠. 그리고 한 번은 밥 다 먹고 닭뼈를 버리고 있었어요. 근데 멀리서 아버지 군번이던 식사 조장 상병이 와서 “어디서 짬 버리냐”라는 거예요. 제가 “이건 짬이 아니라 뼈를 버린 겁니다” 하니까 “버릇없이 고참이 얘기하는데… 너 앞으로 다 먹어” 해서 이후로 닭뼈는 물론 생선뼈까지 그 사람 보는 앞에서 꼬독꼬독 씹어 먹었어요. 그리고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으면 뒤에서 엉덩이 걷어차였던 기억도 나네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그때 키우던 강아지가 뭉치였는데 ‘쟤네는 뭉치다. 어차피 2000년 9월 16일에는 전역이 온다’라고 생각하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러고 두 달 지나니까 적응했고, 세 달 지나니까 일병 되고 곧 일병 말 되고 그랬죠. 또 점호 전 군 디스 한 개비, 화장실에서 몰래 녹여 먹던 약과, 저녁 7시 30분에 혼자 앉아 있는 정보과 사무실. 그런 것들이 힘이 됐어요. 그래도 담배는 몸에 해롭습니다. 피우지 마세요.

가장 힘들었던 훈련은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이 춥다고 하면 저는 속으로 생각해요. ‘추위라는 단어를 느껴 보긴 했을까?’ 꼰대일 수도 있겠네요. 근데 전 너무 추워서 제 몸을 태워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가 혹한기 훈련인데, 포천의 산 속은 영하 36도까지 내려가거든요. 건물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근데 지금 하라고 하면 또 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더위보단 추위가 낫거든요.

반대로 좋아했던 훈련이 있다면요
맨 앞에서 하는 행군이요. 맨 앞은 페이스를 조절해서 안 힘들어요. 힘든 건 뒤에서 간격 맞추려고 쫓아가는 사람이죠. 가평에서 출발해서 남이섬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혹한기 마지막 날이었어요. 끝나면 정문에서 군악대가 연주해주고 연대장님 나와서 “수고했다, 들어와” 하시고. 취침 때 누워서 별 보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좋네요. 또 오래달리기도 좋았어요. 마라톤 대회도 나갔고요.

이렇게 군대를 좋아하는데 직업군인을 할 생각은 없으셨나요
축구랑 태권도만 없었다면 했을 거예요. 전투체육이 가장 싫었어요.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1년 6개월 안에 실전적으로 조직 생활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전 지구상에 대한민국 군대밖에 없지 않을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긍정적인 경험이죠. 그리고 BMI 23~26안으로 국가가 맞춰주잖아요. 저 군대 가서 30kg 빼고 왔어요. 군대 밥도 없어서 못 먹었고요. 군대리아 너무 좋아합니다.

현재의 정승제가 과거 이병 정승제에게 해주고 싶은 말
승제야, 너에게는 군 디스가 있잖아. 전역 금방이다.

#생선님의 편지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인생 책’이 있으신가요
첫째는 『폴 수학』인데,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수학책이고요, 그걸로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빨강머리 앤』이요. 그 책에 앤이 “넌 너무 예쁘구나, 나를 닮은 것 같아, 너의 이름을 코델리아라고 지어주겠어” 하는 대목이 있어요. 현재 제 반려견 이름이 코델리아입니다.

20대 장병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으시다면
『개념 때려잡기』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또 제가 정말 고통스럽게 쓴 책이 있어요. 『정승재 선생님이야』 ‘수학은 태도만 바꾸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책입니다.

국군 장병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수학도 태도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지만 군 생활도 태도인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하면 시간 금방 가거든요. 그러니까 훈련하더라도 우리 부대가 제일 잘했으면 좋겠다는 적극적인 마인드로 하면 금방 지나갑니다. 열심히 한다는 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얘기거든요. 그리고 전역 날, 기분 안 좋습니다. 입대할 때랑 비슷해요. 그만큼 군 생활도 아쉬움이 남는 인생의 일부분이에요. 헛되지 않게 매일을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힘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