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에 열린 <베르나르 뷔페展>에서 진광경이 펼쳐졌다. 평일 오전인데도 100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은 이유는 다름 아닌 정우철 도슨트의 해설을 듣기 위해서였다. 전시는 그야말로 초대박을 터트렸고, 그는 도슨트계의 샛별이 됐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지 불과 2년여 만에, 도대체 어떤 특별함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었을까?

#전시장의 피리 부는 사나이

‘도슨트’라는 직업이 장병들에겐 생소할 수도 있다. 우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달라 도슨트라는 직업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인사할 때 ‘전시 해설가 도슨트 정우철’이라고 해요. 말 그대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관람객분들이 전시를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설가라고 보시면 돼요. 큐레이터와 헷갈리는데 많이들 헷갈려 하세요. 쉽게 말씀드리자면 큐레이터는 전시를 만드는 사람이고, 도슨트는 그 전시를 해설해주는 사람이에요.

대학에서 미술이 아닌 영화를 전공했다고. 어떻게 도슨트의 길을 걷게 됐나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과에 들어갔는데
막상 해보니 저와 잘 안 맞았어요. 어쨌든 4년 내내 영상을 공부했으니까 졸업 후 교육 영상 회사에 취업했죠. 그러다 27살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재미있고 보람찬 일이 있으면 어떡하지? 나한테 더 잘 맞는 일이 있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고민하다 퇴사를 결심했죠. 대책 없이 나온 거라 한동안은 온갖 일을 했어요.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했던 것 같아요. 엑스트라도 하고, 경복궁에서 한복 입고 있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각종 행사 스태프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불현듯 어렸을 때 어머니의 전시회에서 즐거웠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어머니가 화가이셨거든요. 그래서 전시장 스태프를 하게 됐죠. 스태프 일을 하면서 도슨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관객들 앞에서 작품 해설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죠. ‘아 저거다’ 딱 느낌이 왔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는데요. 도슨트 양성 교육을 신청할 때마다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보니까 경쟁률이 꽤 높더라고요. 그럼 일단 다시 전시 스태프를 하면서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스태프 면접을 봤죠. 근데 정말 우연치 않게 그날 도슨트로 면접 보기로 한 사람이 안 온 거예요. 그러면서 거기 직원이 저한테 도슨트 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죠. 바라던 일인데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게 우연히, 운명처럼 도슨트의 길을 걷게 된 거죠.

미술을 전공한 게 아니라서 전시 해설의 준비 과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전공자보다 기본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까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힘들었죠. 그래서 제 나름대로 다짐을 했어요. 보통 전시회에서는 한 화가를 다루잖아요. 내가 맡은 화가만큼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어떤 해설가보다 잘 알아야겠다고 맘먹었죠.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 걱정이 점차 자신감으로 바뀌더라고요.

비전공자라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면 가장 큰 장점은 비전공자, 즉 일반인의 시선을 안다는 거예요. 어떤 부분이 어렵고, 어떤 부분을 모르는지 분명히 알죠. 그래서 제 해설이 일반 대중에게 잘 먹히는 것 같아요. (웃음) 단점은 일단 앞서 말씀드린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거. 제가 옛날에 나온 미술책들을 많이 보는데요. 아무래도 전공자를 위한 책이다 보니까 생소한 용어들이 너무 많죠. 한 문장에 모르는 단어만 4~5개 될 정도로요. 그게 단점이고, 또 하나는 전공자분들의 시선이에요. 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최근엔 이런 말도 들었어요. “비전공자는 잠깐 반짝하다 사라진다, 오래 못 간다.” 미술계가 은근히 보수적이에요. 이걸 극복하는 게 힘들죠. 그래서 더 악착같이 하는 거예요. 반짝하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요.

그럼 영화를 전공한 걸 후회하나 절대요. 왜냐하면 해봤으니까 나에게 뭐가 맞고, 뭐가 안 맞는지 알았잖아요. 그리고 그때 배운 것들이 지금 도슨트
일을 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돼요. 영화를 공부하면서 시나리오 쓰는 법을 배웠거든요. 그래서 전시 해설을 할 때 단순한 설명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죠. 교육 영상 회사에서는 수많은 강사분들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재미있는 강연이 되는지 배웠어요. 지금 제가 구사하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보면 그때 보고 터득한 것들이죠. 이런 과정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겠구나 싶어요. 장병들 중에서도 저 같은 경우가 있을 거예요.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걸 막상 해봤는데 본인과 맞지 않는 경우. 그래도 괜찮아요. 일단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았고, 쓸모없는 배움은 없거든요.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고 자책하지 말고, 자기만의 정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보통 해설을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 전시 하나를 준비하는 데 3개월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요즘엔 워낙 할 일이 많아서 조금 줄긴 했어요. 그래도 최소 한 달 반 이상은 공부해야 하죠. 어떻게 준비하는지도 궁금하다 저만의 스타일이 생겼어요. 먼저 해당 화가와 관련된 책 네 다섯 권을 사서 읽어요. 그러면 어느 정도 화가의 인생이 보이죠. 책을 다 봤으면 인터넷에 화가 이름을 검색해서 뉴스 섹션을 봐요. 여기서 중요한 게 뉴스를 최신순이 아닌 오래된 순부터 읽어요. 옛날 기사부터 2021년 기사까지 전부 다 읽죠. 이런 식으로 책과 뉴스를 가장 많이 보는 편이에요.

화가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일본까지 다녀왔다고 <베르나르 뷔페展>을 준비할 때인데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라 자료가 많지 않더라고요. 찾아보니까 일본에 뷔페 미술관이 있는 거예요. 거길 가서 일정 내내 그림을 보면서 공부하고 책도 사왔죠. 사실 해설을 위해 사비를 털어 해외까지 가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덕분에 뷔페전에서 유명해진 것 같아요.

화가인 어머니의 도움을 받진 않았나 어머니 역시 전공자가 아니세요. 그래서 일반인과 똑같이 전문적인 용어는 잘 모르시죠. 근데 이게 또 도움이 되는 게 있어요. 전시를 앞두고 꼭 어머니께 제 해설을 들려드리는데요. 어머니가 이건 모르겠다, 이건 이해가 안 간다고 말씀해 주세요. 그걸 토대로 이야기를 수정하고 보완하죠. ‘관람객분들에게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자’가 모토이거든요.

‘도슨트계의 아이돌’ ‘전시장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 불리고 있다 네 맞아요. (웃음) 앞서 언급했던 <베르나르 뷔페展> 때 그 별명이 생긴 거예요. 우리나라에선 유명하지 않은 화가였기 때문에 처음엔 관람객이 많지 않았어요. 처음 딱 해설을 하는데 10명 정도 있었죠. 근데 입소문이 퍼지면서 관람객이 점점 늘어나더니 나중엔 100명이 넘더라고요. 이게 매일 지속됐죠.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 오셨던 분들이 아직까지 찾아와 주세요. 정말 감사드리죠.

이제껏 정말 많은 관람객을 만나지 않았나.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관람객이 있다면 군인 친구 한 명이 있어요. 입대 전 대학생 때 처음 제 해설을 들은 친구인데요. 제가 해설하는 전시에 꼭 와줘요. 얼마 전에도 군복 입고 왔더라고요. 또 한 분은 <베르나르 뷔페展> 때인데요. 여자친구와 같이 온 남성분이었어요. 20대였던 것 같은데, 해설을 들으면서 오열을 하는 거예요. 뷔페라는 화가의 인생이 참 슬프긴 해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셔서 굉장히 가난하게 살았거든요. 그래서 도슨트를 들으면서 우시는 분들이 꽤 계시긴 한데, 보통은 여성분들이죠. 근데 남성분이 너무 서럽게 우니까 궁금하더라고요. 얼마 뒤에 SNS로 장문의 메시지가 왔어요. 여자친구분이 보냈는데, 알고 봤더니 그 남성분이 디자이너이고 얼마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대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회사도 그만두고 그림도 안 그리고 삶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대요. 그렇게 집에만 있다가 여자친구가 이러지 말고밖에좀나가자,뭐라도 좀 해보자 그래서 데리고 온 곳이 뷔페전이었던 거죠. 근데 화가의 인생과 본인의 인생 사이에 맞닿는 지점이 있었던 거예요. 여기에 위로를 받으면서 눈물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회사도 다시 다니고 그림도 다시 그린대요. 그러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남자친구의 웃는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봤다고 했죠. 이 말을 아직도 못 잊어요. 지금도 그 메시지를 저장해놓고 가끔 보죠. 의외로 이런 분들이 많아요. 전시를 통해 위로받고 가는 분들이 제법 계시죠. 장병 여러분들도 힘들고 지칠 때 전시회에 꼭 한번 와보셨으면 좋겠어요.

남녀노소 다양한 관람객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해설에 있어 어떤 기준이 있나 제가 해설을 하는 이유는 전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예요. 전공자나 미술에 조예가 깊은 분들보단 초보 관람객들을 기준으로 해설을 하죠. 그래서 그림 분석이 아닌 작가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야 전시에 재미를 느끼고 다시 전시장을 찾으시니까요.

전시보다는 도슨트에 주목하는 상황이 부담스럽진 않은지 부담을 많이 느끼죠. 얼마 전엔 도슨트가 취소됐어요. 관람객이 너무 몰려서요.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죠. 사실일찍자면불안해서새벽2시전에자본적이없는것 같아요. ‘이전 전시보다 못하면 어떡하지, 다음 전시 때 사람들이 실망하면어떡하지’하는걱정때문에쉬지못하고뭘계속봐야 하죠. 근데 이건 숙명이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지칠 것 같은데 최근에 ‘내가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게 맞나,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주 동안 하루도 못 쉬고 맨날 새벽 3시에 잠들고 그랬거든요. 이렇게 지치다가도 저를 보러 찾아와주시는 관람객들을 뵈면 힘이 나죠. 정말로요.

쉬는 날엔 뭐 하면서 보내나 쉬는 날에도 푹 쉬진 못해요. 카페 가서 전시와 무관한미술책을읽는게나름쉬는거죠.한동안은친구도안만났어요.친구 만나면 술 마시게 되잖아요. 그럼 하루가 너무 아까운 거예요. 지금도 말이 쉬는거지 항상 미술책을 끼고 살죠.

도슨트를 꿈꾸는 장병들에게 현실적인 조언 한 마디 해달라 잘 선택해야 해요. 왜냐하면 이 길이 힘들어요. 도슨트 하면 아직도 자원봉사라는 인식이 있거든요. 심지어 돈을 왜 주냐는 사람들도 있죠. 다행히 점점 도슨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긴 해요. 도슨트가 전시의 성공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에상업전시에서는돈도꽤받을수있죠.물론전시해설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어요. 제가 처음 도슨트를 할 때가 28살인가 그랬는데,주6일했거든요.그렇게한달을해서받은돈이100만원도채 안 됐죠. 진짜 힘들었어요. 예전보단 나아지긴 했지만 처음엔 힘들 수 있어요. 그걸 감안해야 하고, 그럼에도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좋고, 그림이 좋고, 해설하는 게 좋다고 하면 추천하죠.

#나의 군 생활 이야기

군 생활은 어디서 했나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요. 22사단 55연대 1대대 3중대 2소대. (웃음) 2010년 2월에 입대해 2011년 11월에 전역했죠. GOP에 있었고요. 보직은 일반 소총수였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막사 앞에 엄청 오래된 나무가 한 그루 있었어요. 대대장님께서 그 나무가 싫으셨나 봐요. 뽑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엄청 컸는데, 소대 인원 전체가 나와서 땅을 파고 나무를 뽑아 딴 데 옮겨 심었죠. ‘역시 군대에선 안 되는 게 없구나’ 다시 한번 느꼈던 작업이라 기억이 나네요. (웃음) 또 하나는 비무장지대에서 특수작업에 투입됐는데요.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게 살면서 그렇게 예쁜 풍경은 처음 봤어요. 대대장님께서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야생 동물들이 뛰어다니고, 무슨 밀림 같았죠. 위험하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그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못 봤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었던 훈련은 무엇이었나 유격훈련이 제일 힘들었죠. 어떻게 버텼나 싶어요. 지금도 생각나는 게 장애물 넘는 훈련이 있잖아요. 너무 위험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조교한테 “위험하지 않습니까?”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그랬죠. 근데 제 앞에 있던 동기가 장애물에서 떨어져 다친 거예요. 그 다음이 제 차례인데 얼마나 무서워요. 벌벌 떨었죠. (웃음) 100km 행군도 힘들었어요. 22사단이 꼭 100km 행군을 하더라고요. 2박 3일을 안 자고 걸어야 하는데, 그때 정말 인생의 한계점을 느낀 것 같아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 한계점만 넘기면 괜찮아지더라고요. 이게 지금도 도움이 돼요.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 ‘이것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참죠.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거 좀 잘했다’ 하는 훈련이 있다면 저 100km 행군 잘했어요. 마지막 코스가 GOP 산 타는 코스였거든요. 진짜 잘 걸어갔어요. 낙오된 후임들까지 끌고 가면서요. 대대장님께 칭찬도 많이 들었죠. 그리고 자부할 수 있는 게 모든 훈련에서 단 한번도 낙오된 적이 없어요.

당시 급식은 어땠는지 저는 군 생활하면서 살이 찐 케이스예요. 너무 잘 먹어서. (웃음) 모든 메뉴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소시지 볶음에는 환장했죠. GOP에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급식은 잘 나왔던 것 같아요. 부식도 잘 주고요. 아! 저 그것도 좋아했어요. 건빵을 부셔서 우유에 말아먹는 건프레이크.

혹시 군대에서 서럽고 슬펐던 순간이 있었나 훈련소 끝나고 자대배치 받기 전에 어머니와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요. 입대 후 첫 통화였어요. 진짜 엉엉 울었죠. 안 울 줄 알았는데. 그리고 서럽고 슬프기보단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말년 병장이었을 때. 그전엔 몸이 힘들었다면, 말년 병장 땐 정신적으로 힘들더라고요. 사회에 다시 나가야 되는 순간이 오니까 ‘이제 뭐하고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밀려오는 거죠. 그때마다 전 책을 봤던 것 같아요. 도움이 되더라고요.

무슨 책을 읽은 건가 제 전공이었던 영화 관련 책도 보고, 자기계발서도 많이 읽었어요. 맘에 드는 문장은 따로 적어두기도 하고요. 장병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게 있어요. 군대에서 일기를 쓰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전 지금도 그때 쓴 일기를 보거든요. 너무 재미있고 당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죠. 나중에 확실히 추억이 될 거예요. 일기 꼭 쓰세요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는 ‘나 이런 선임이었다’ 제가 방송에 나온 뒤 소식이 끊겼던 맞후임한테도 연락이 왔죠. 순간 ‘혹시 내가 안 좋은 짓을 했나’ 반가움 반 걱정 반으로 메시지를 읽어봤는데, 다행히도 고마웠다는 내용이었죠. 이 친구가 이등병 때 사고를 많이 쳤는데 딱히 뭐라고 안 했어요. ‘그냥 내가 혼나고 말지’ 하고요. 그래서 고맙다고, 덕분에 군 생활을 잘 할 수 있었다고 연락한 거였죠. ‘아 내가 군 생활을 못 하진 않았구나, 내가 나쁜 선임은 아니었구나’ 느꼈어요. 돌이켜보면 제 맞선임이 저보다 한 살 어렸는데 굉장히 잘해줬어요. 일도 잘했고, 제가 실수를 해도 차근차근 다시 알려주고, 대신 혼난 적도 많죠. 그런 선임 밑에 있었기 때문에 후임에게도 잘 해줬던 게 아닌가 싶어요.

휴가와 얽힌 에피소드가 있나 이등병 때이죠. 첫 휴가 나왔던 날. 그때의 감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사람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좋았죠. (웃음) 휴가 나와 남서울터미널에 도착해 동기들과 중국집에 갔어요. 먹고 싶었던 걸 다 시켜 먹었는데, 천국이 따로 없었죠. (웃음) 복귀하기 전날엔 지금도 기억나요. 술 마시고 울었어요. 친구들 붙잡고 너무 가기 싫다고, 하하.

20대 군 장병들이 어떻게 하면 미술작품과 친해질 수 있을까 저도 최근에 책을 냈는데요. 요즘 나오는 미술책들은 정말 쉽고 재미있어요. 군대 도서관에도 아마 있을 거예요. 그런 책부터 읽다 보면 미술과 가까워질 수 있죠. 또 한 가지 방법은 그림이 아닌 화가로 접근하세요. 그림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일단 화가에 대해 알아보는 거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많을 거예요. 유튜브 보셔도 좋고요. 반 고흐 검색하면 고흐의 웃긴 에피소드만 모아 놓은 영상들이 있어요.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을 알려주는 영상도 있고. 찾아보면 재미있는 게 상당히 많죠. 이렇게 재미 위주로, 자극적인 거 위주로 보다 보면 미술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거예요.

앞으로 도슨트 정우철이 그려나갈 청사진에 대해 말해달라 어쨌든 제가 추구하는 건 똑같아요. 전시에 처음 오시는 분들을 위해 해설을 하는 건 기본이에요. 이제 전시 해설은 일로 생각 안 해요. 그냥 내 거인 거죠. 그걸 일로 생각하는 단계는 넘었어요. 꿈이 있다면 책을 더 쓰고 싶죠. 미술관 관람법을 다룬 책으로요. 한 10년, 20년 뒤엔 미술사 책도 쓰고 싶고요. 미술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도슨트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 직업으로서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죠. 꾸준히 방송을 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에요.

끝으로 국군 장병들에게 따뜻한 응원 부탁한다 혈기 넘치는 20대에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저도 군인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진부한 말이지만 지나고 보면 소중한 추억이 돼요. 진짜로요. 그리고 당시엔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와서 어떻게든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 순간 자체를 긍정적으로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니까. 그런 마음으로 군 생활에 임하길 바라요.

힘HIM